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우렐류 고메스 (문단 편집) === [[토트넘 홋스퍼 FC]] ===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1194980-0291DC3A000005DC-824_468x453.jpg]] 이러한 활약을 유수의 클럽들이 눈여겨보았고, 경국 2007-08시즌 종료 후 78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토트넘 홋스퍼 FC]]로 이적, EPL 무대에 도전하게 되었다. PSV시절 동료였던 [[이영표]]와 다시 한 번 한솥밥을 먹을 뻔 했으나, 이영표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하며 엇갈리게 되었다. 고메스는 [[첼시 FC]]전에서 준수한 경기력으로 팀에 무승부에 일조하며 무난한 스타트를 끊나 싶었으나, [[아스톤 빌라 FC]]전에서 [[애슐리 영]]의 슛을 펀칭미스로 먹힌 이후로 페이스가 떨어졌고, 팀도 강등권까지 밀리는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 그러다가 풀럼전 알까기 실점 이후 11월에 골키퍼 코치가 전직 토트넘 골키퍼였던 토니 파크스로 바뀐 뒤, 폼이 급격하게 올라오면서 후반기에는 준수한 경기력을 보여줬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경기에서는 한때 팀 동료였던 [[박지성]]의 결정적인 슛을 슈퍼세이브로 막아내기도 했다. 후반기에는 홈경기에서 클린시트를 계속 적립하며 안정감을 보였다. 그리고 2009-10 시즌, 시즌 초 사타구니 부상으로 한달 부상을 끊고 온 고메스는 미칠듯한 페이스로 슈퍼세이브를 연속해서 작렬시켰고, 팀 역시 순위가 쭉쭉 올라가며 챔스권을 노려보게 되었다. 특히 후반기 [[첼시 FC]]전이나 [[맨체스터 시티 FC]]전에선 그야말로 신들린듯한 선방을 연속해서 작렬하며 팀을 캐리했다. 그렇게 토트넘은 사상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진출에 성공했고, 고메스는 토트넘에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2010-11시즌 토트넘은 역사상 첫 챔피언스리그 무대를 밟았고, 챔스 4강 경험자인 고메스에 대한 기대는 컸다. 그러나 고메스는 [[인터 밀란]]과의 조별리그 경기에서 전반 10분도 채 되기전에 퇴장당하며, 결국 팀은 [[가레스 베일]]이 [[마이콩]]을 압도했음에도 3-4로 패했다. 리그에서의 경기력도 여러차례의 실수로 신뢰도를 잃어가며 작년에 비해 떨어진게 눈에 보이던 와중, 4월에 열린 [[레알 마드리드 CF]]와의 챔스 경기에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중거리슛을 펀칭미스로 실점하는 등 실수를 하면서 두경기에서 5실점을 기록, 팬들의 비판에 시달리더니, [[4월 30일]], [[첼시 FC]]와의 리그 경기에서 [[프랭크 램파드]]의 슛을 알까면서 실점, 결국 고메스에 대한 여론은 대폭발했다. 결국 토트넘은 시즌 종료 후 40살의 노장 [[브래드 프리델]]을 영입해 고메스와 경쟁시키기 시작하더니, 그리고 시즌 개막전부터 고메스는 프리델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고 컵대회 키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더니 보드진이 [[올랭피크 리옹]]의 주전 골리 [[위고 요리스]]까지 영입했고, 써드키퍼는 과거 [[첼시 FC]]에서 뛴 바 있던 [[카를로 쿠디치니]]가 담당하면서 고메스의 역할은 4번째 골키퍼가 될 정도로 추락했다. 결국 고메스는 [[2013년]] 1월 마지막날 분데스리가의 [[TSG 1899 호펜하임]]으로 반시즌 임대를 떠났다. 호펜하임에선 그럭저럭 괜찮은 경기력늘 보여줬으나, [[4월 6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의 경기 도중 손허리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해 시즌아웃되었다. 이후 2013년 여름에 토트넘으로 돌아왔으나 요리스가 잘 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고메스의 자리는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